비난은 누워서 침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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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산부, 미성년자, 심신박약자는 이 글을 읽는 것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는 사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 1 to 17 pages

"IF YOU WANT TO GATHER HONEY, DON'T KICK OVER THE BEEHIVE"
 

 

  국내에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고 잘 알려져 있는 책입니다. 블로그 카테고리에 DALE CARNEGISM 이라고 별도로 만들어 전문 블로깅을 하여 소개해 드리고 싶을 만큼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앞으로 하나 둘 다루겠지만 이 책이 말하는 인간 관계의 절대적인 방법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의 구조를 한번쯤 뒤흔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흔듬은 혼란이 아닌 사회적으로 그리고 본인에게 더 큰 행복과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첫 단락, 벌을 모으고 싶으면 벌집을 차지 말라. 물론 벌집을 걷어 차게 되면 모든 벌들이 나에게 모일 수 있곘으나 그 후유증은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따라서 달콤살벌한 벌을 부드럽게 모으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에 대한 접근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기술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정당화한다.

맨 위에서 언급한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사진입니다. 위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 L : Two Gun , C : Crowley , R : Electronic Chair >
               
  "Under my coat is a weary heart, but a kind one - one that would do nobody any harm"  

  
1931년 미국 롱 아일랜드의 어느 시골길에 세워져 있는 차안에서 크로울리라는 한 청년이 자신의 애인과 밀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하면서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의 대답은 그 경찰관을 향해 쏟아내는 총알 세례였습니다. 이 후 뉴욕 애인의 아파트에서 총격전 끝에 체포되었고 Sing SIng 교도소에서 전기의자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것은 누군가를 죽여서가 아닌 내 자신을 보호한 대가일 뿐이다"

  "나는 내 인생의 전성기를 사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런데 결국 나에게 남겨진 것은 차가운 세상의 비난과 전과자라는 낙인뿐이다." 이와 같은 말을 남긴 사람은 한 대 시카고를 손에 쥐고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암흑가의 황제 알 카포네였다. 또 한 뉴욕의 악명 높은 조직폭력배 더치 슐츠도 죽기 직전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사회사업가라고 일컬었다.


 
#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 그들은 단지 다른 환경에 있을 뿐

  "Don't criticize them; they are just what we would be under similar circumstances."

  1865년 4월 15일 링컨의 죽음을 지켜보던 스탠튼 국방장관은 이렇 말했습니다. "지금 누워계신 이 분만큼 완벽하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남북전쟁 때 포토맨 전투에서 승전보를 얻기 위해 장관들을 교체하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1863년 7월 양측의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게 되었고 상대편의 리장군은 포토맥 강까지 퇴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링컨은 추격하여 괴멸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미드 장군은 시간을 지체하였고 결국 리장군과 패잔병들은 무사히 퇴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링컨은 분노하여 실망감과 앞으로의 사태를 우려하는 비난격의 편지글을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현장에서 전우들의 고통을 눈에 보는 장군과 책상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보며 끝내 그에게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 그저 작은 아이일 뿐인데..

  "He is nothing but a boy - a liitle boy "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의 Father Forgets 는 100여년 전 미국 피플스 홈 저널 에 게재된 이후 전세계 수백 종의 잡지와 신문에 실리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들아, 듣고 있니? 조그마한 손을 뺨 아래로 늘어 뜨리고 젖은 이마의 머리카락을 흐트린 채 잠든 너에게, 아빠가 얘기하고 있단다. 나는 혼자 너의 방에 숨어 들어왔단다. 조금 전, 서재에서 신문을 보다가, 가슴 아픈 후회가 나에게 엄습하더구나. 죄책감을 느끼며 너의 침대맡으로 왔다.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 너에게 화가 나 있었어. 타월로 얼굴을 쓱 닦고 말았다는 이유로 등교 준비를 하는 너를 꾸짖었고, 신발을 닦지 않았다고 책망했다. 네가 물건을 바닥에 던졌을 때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지. 

  아침을 먹을 때도 나는 흠을 잡으려 했어. 무언가를 쏟고, 음식을 씹지않고 먹고,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린 것. 빵에 버터를 너무 많이 바르는 것.... 내가 차를 타러 나갈 때, 놀러 나가면서 너는 뒤 돌아서 손을 흔들며 " 잘 가요 아빠!” 라고 소리쳤지. 그때 나는 얼굴을 찌푸리면서,”어깨를 좀 피렴!” 이라는 대답을 했지.

  저녁때 이런 일이 되풀이 되었어. 길을 걸어올라 오다가 무릎을 꿇고 마블놀이를 하고 있는 너를 감시했단다. 너의 스타킹에는 구멍이 나 있었어. 나는 너를 앞세우고 집으로 끌고 가면서 너의 친구들 앞에서 챙피를 주었지. ‘스타킹은 비싸단다- 네가 그걸 사야 한다면, 넌 아마 조심했을 꺼야 ‘ 아들아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너 기억하니? 내가 서재에 있을 때, 네가 상처입고 겁먹은 모습으로 어떻게 내게 왔는지를.... 나는 방해 받았다는 생각에 참을성 없이 신문위로 흘끗 쳐다보았단다. 그때 너는 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었고, 나는 “ 네가 원하는 게 뭐니?” 라고 쏴 붙였지..

  넌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달려와서 나를 목을 감싸고 내게 키스를 했었지. 하나님이 너의 가슴속에 피워놓아 시들지 않는 사랑이 너의 작은 팔을 감싸고 있었어. 그리고 넌 가버렸지 계단을 후다닥 올라가는 소리를 내면서...

  아들아, 잠시 후에 신문이 내 손에서 떨어졌고, 나는 가슴저린 두려움을 느꼈단다. 자꾸 흠을 잡고 꾸짖으려고만 하는 나의 습관이 ‘소년’이 되는 너에 대한 나의 보답이었다니. 그건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어린 너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거야. 내 나이의 잣대로 너를 평가하려 했단다. 

  너에게는 좋은 면이 이렇게 많은데... 너의 작은 가슴은 드넓은 언덕위로 지는 새벽보다 크단다. 달려와 내게 굿나잇 키스를 하는 너의 모습에서 알 수 있어. 부끄러워하며, 나는 어둠 속에서 너의 침대맡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있단다. 

  이건 미약한 사과일 뿐이야; 네가 깨어있을때 이런 말을 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걸 난 알고 있단다. 그러나 내일 나는 진짜 아빠가 될 꺼야! 너랑 친구같이 지내고 내가 괴로워할 때 나도 괴로워하고 내가 웃을 때 같이 웃는 아빠가 될께. 참을성 없이 말이 나오려 할때는 혀를 깨물겠어. “ 이 아이는 단지 소년이다- 작은 소년!” 이라고 항상 생각할께.

  내가 널 어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작은 침대에서 지쳐서 자고 있는 너를 보고 네가 아직 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제 네가 네 엄마의 품속에서 엄마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너에게 요구했구나.



# 누워서 하늘에 침뱉기

올리고 나서 보니 그림이 조금 혐오스럽네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ㅠㅠ



  인간관계론이라는 한글판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영문으로 읽어서일까 첫 부분에서 언급했던 범죄자들의 정당성에서부터 시작하는 접근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단락에서는 뚜렷한 결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사례를 보며 비난과 이해의 뿌리에는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정당화가 전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범죄자들도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라는 근거를 들기 보다는 일상적인 모습들에서 근거를 가져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의 일탈 행위와도 같은 범죄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이미 일반 시민들보다 더 극단적인 자기 정당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며 그런 사례는 독자들로 하여금 극단적 상대주의적 사고와의 충돌을 유발하여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 개인적으로 처음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었을 때 극단적 상대주의와 현실의 괴리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 )

  아무튼 이와 같이 사람들의 자기 정당화에 대한 문제 인식을 제기하면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닥치는 비난에 대한 본능적인 자기 방어가 존재한다고 말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링컨의 사례를 통해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그 반발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이를 응용하여 비난하기 전에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고 말을 합니다.

  저도 물론 이 책을 통해 인식을 깨우치게 되었지만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리적인 구조가 다르고 성장하는 후천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빨간색을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은 내 품안에서 숨을 거둔 사랑하는 사람이 흘린 피가 떠오를 수가 있는 것이고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의 달콤한 입술이 떠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현상 인식에 '방정식'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원활한 인간 관계를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세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취약한 부분입니다. 이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에 단 5분간만 귀를 기울여도 엿볼 수 있습니다. A와 B가 둥근 테이블에서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한다 하여도 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하여도 먹이를 노리는 독사처럼 상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가 제시한 안건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데에 온갖 심혈을 기울입니다.

  저는 이해와 포용이라는 것은 내가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은 선마저도 물러날 수 있는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떠한 잣대를 세워놓고 이만은 양보 못해라는 자세로 누군가와 인간 관계를 맺거나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의 아무리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하여도 그는 형식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안건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나눈다거나 심지어는 국정을 펼칠 때에도 이해와 포용의 자세는 절실히 요구됩니다. 내가 기존에 세워놓은 흑백논리, 편견, 아집 등을 그 순간만큼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잠시 묻어두고 '대화'를 시도한다면 그는 기존의 방식이 낳은 결과보다 더욱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더욱 온화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앞으로 데일 카네기를 연구하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SKILL을 가르쳐 드리고자함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끔 도와드릴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또 한 언제든 좋은 의견과 질문들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ah 2017.11.10 13:23 신고 URL EDIT REPLY
어떠한 현상인식에 방정식은 존재할 수 없기에 역지사지를 해야한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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