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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역사가 살아있네

조선시대 폭군이자 흥청망청을 기원이 된 연산군

조선시대 폭군이자 흥청망청을 기원이 된 연산군

 

 

조선시대 최고의 폭군이자, 흥청망청의 기원을 만들어 낸 연산군. 현실 인지와 훌륭한 정치 수완을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지만 그 결과는 초라한 죽음이었을 뿐입니다. 일방적인 리더십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01 연산군은 왜 독재자가 되었나?


연산군은 문종과 단종에 이어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조선의 10대 왕이었습니다. 연산군이 왕에올랐을 때 현실 인지 능력과 정치 수완이 좋았기에 카리스마 있는 유능한 군주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림파와 대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림파는 지방에서 성리학을 공부했던 학자로 견제의식이 강해 직간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요즘 시대로 말하자면 YES MAN과 정반대의 인물인거죠. 

 

 

 

 

02 연산군의 대표적 폭정, 무오사화, 갑자사화, 신언패


그래서 연산군은 이런 사림파들이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을 처단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두 번의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그 첫번째가 1498년 무오사화입니다. 실록청에서 성종실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사초를 모았는데 사림파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이 쓴 글에서 조의제문(항우가 의제를 죽인 것에 빗대어 세조를 비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훈구파가 고발했고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 사관들이 숙청되고 유배되었습니다.

 

두번째는 1504년 갑자사화입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사건은 성종 때부터 입에 담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림파 임사홍이 언급을 했고 이에 가담한 명단을 입수해서 연산군이 처형을 시켰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은 이 외에도 관리들에게 신언패를 착용하게 했는데 입은 화의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라는 내용이 기재 되어 있었습니다.

 

 

 


03 흥청망청의 기원이 된 연산군


연산군은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면서 민생을 돌보기보다는 매일 잔치를 열고 흥청을 모집해 유흥을 즐겼습니다. 흥청이라는 왕명으로 모집한 기녀의 명칭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놀고 즐기는 모습을 뜻하는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연산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04 중종반점의 발발로 유배된 연산군


아무리 절대적 왕권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참다참다 못한 신하들이 1506년 중종반정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연산군은 강화도에 유배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달만에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연산군은 독재와 폭정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명박, 박근혜은 물론 최근의 양진호까지.. 이렇게 가시화 되고 있는 사건들도 있지만 아직도 폭정을 행하는 리더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더욱 더 부당한 사건들이 표면에 들어나 사회가 바로잡히길 기대합니다.